공책과연필/애프터노트
2009/10/27 18:32
양질의 블로깅을 하겠다며, 리뷰를 미룬지 한달여. 이젠 기억도 제대로 나지 않아 뭘 써야할지 모르겠다. 역시 온갖 종류의 느낌들이 휘발되고 나서 남는 찌꺼기는 그리 매력적이지도 정확하지도 않으며 끈적하게 굳은 기름때처럼 자신감이 결여되어 있다.
책을 읽기로 했던 그 때로 돌아가보자면, 약간은 요란스럽게 날아온 그의 신작소식과 예약판매 이메일에 일단은 거부감이 들었던 것이 사실이고, 누구나 다 읽고 있는 그 책, 당대의 베스트셀러를 읽는 것 자체에 대한 반감도 작지 않았다. 실제로 책의 어마어마한 두께에서 오는 부담과 소요시간을 줄여보고자 전철에서 읽었다가, 바로 옆 자리에 앉은 여자 승객이 나와 같은 1권의 비슷한 부분을 읽고 있다는 걸 깨달았을때 드는 당혹감과 부끄러움, 그렇다고 해서 책을 덮어 가방에 넣어버릴 수도 없는 그 묘한 감정은 말로 표현하기도 힘들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확실한 건, 최근에 나온 그의 책 중에서 가장 재미있는 편에 속한다는 것. 1,200쪽이 넘는 분량에도 손에서 뗄 수 없이 계속 책장을 넘기게 한다는 점만으로도 충분히 매력적인 소설이다. 게다가, 문장 하나하나가 매우 완성도 있고 몇번이나 고쳐쓴 느낌이 나는 더하지도 덜하지도 않은 양질의 표현들이었다는 점에서 정말 존경스러울 정도랄까. 또 하나는 그의 소설 초기에서의 개인 내면의 문제에서 벗어나 조금씩 바깥세상으로 나오고 있다는 점이 주목할 만했다. 개인과 사회의 관계, 사회의 어두운 부분과 그 악영향에 대한 작가의 성찰과 관심이 작품에도 드러나고 있었던 것이다.
사실 <1Q84>를 읽기 직전에, <세계의 끝과 하드보일드 원더랜드>를 읽은 나로서는 상당히 많은 공통점을 발견할 수 있었는데, 두 개의 세계의 공존(1984:1Q84 VS 현실(하드보일드 원더랜드):세계의 끝), 개체와 분신의 존재 (도터 VS 그림자), 눈에 보이지 않는 것의 영원함 또는 중요성(사랑 VS 마음)이 바로 그것이다. 그때에 비해서 상당히 진화했고 사회적 대중적 성격이 짙어졌으며 현실성을 더 했다고 할 수 있지만 말이다. 최근 그의 소설에서 느껴지던 공허함 혹은 무언가의 결여됨을 극복했던 작품이라고 생각되는 바. 그리고, 왠지 모를 느닷없고 부족한 결말은 내년 여름에 출간된다는 속편 내지는 3권에서 해결되지 않을까 싶다.
녹슬지 않은 상상력과 표현, 날이 갈수록 더해지는 문장력과 퀄리티, 스케일 ★★★★
사족
1. 많은 이들이 <1Q84>를 <IQ84>로 착각했다. 친구들과 서점에 갈때마다 너도 나도 기다렸다는 듯 1Q를 IQ로 읽더라. 나도 잠깐은 IQ가 84인 사람들의 이야기로 생각하기도 했다.
2. 일본 사람들은 참으로 말장난을 좋아하나봐. 이치'큐'하치욘을 다르게 표기하는 하루키에게선 카피라이터의 자질이 엿보이기도 한다. (그는 많은 카피라이터들이 좋아하는 작가이기도 하다) 형태적 특성으로 봤을때 난 Q를 소문자로 표기했다면 숫자'9'와도 비슷하여 그의 의도가 더 살아났을 거라고 아쉬워 했다.
3. 우리나라에서도 서점마다 따로 코너를 마련하고, 전체메일을 발송하며, 등장하는 음악씨디를 부록으로 주는 등 대대적인 마케팅 활동을 벌였지만. (그 이면에는 오랫동안 문학사상사와의 계약이 문학동네로 넘어간 배경과 선인세 10억의 무게가 적지 않았으리라고 생각된다) 일본에서도 상당한 물량의 마케팅이 있었다. 그 증거가 바로 의도치 않은 '게츠구 드라마에서의 PPL'이다.
버저비트에 나온 <1Q84> 보기 (클릭)
4. 개인적으로 아오마메가 착용했던 구두 '찰스 주르당'과 정장 '시마다 준코'가 너무나도 궁금해 구글링 해보았는데 다음과 같은 귀한 자료를 찾을 수 있었다. 한마디로 그냥 심플하고 모던한 정장 스타일(그러나 80년대 이므로 지금과는 사뭇 느낌이 다르다)이었다. 원피스의 라인은 요즘 유행하는 골반에서 다리에 걸쳐 약간 붙는 스타일인데, 이런 핏의 정장 스커트를 입고 철책을 넘었다니, 역시 멋진 아오마메다;시마다 준코와 찰스 주르당 맛보기 (클릭)
* 80년대의 시마다 준코 패션쇼 영상 바로가기5. <1Q84>는 꽤나 출판계에서 화제가 됐던 모양인데, 그 여파로 KBS 책읽는 밤에서 주제로 채택되기도 했다. 좀더 심도있는 얘기를 나눌 줄 알았더니, 그냥 출연자들의 독자로서의 주관적인 감상에 크게 지나지 않아 약간은 김이 빠졌달까. 그래도 볼만하긴 했다.
방송 다시보기 (클릭)
6. 뭐랄까 나는 이 책의 제목을 '일큐팔사'라고 읽지 않고 '천큐백팔십사'로 읽고 싶은 마음이 간절하다. 물론 작품의 느낌이나 톤앤매너와는 상당히 거리가 있으므로 설득력이 떨어짐은 말할 것도 없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