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상추와 그여자
“샌드위치 먹는구나”
갑자기 길을 지나던 행인이 나에게 말을 걸었다. 깜짝 놀라 돌아보니 ‘거나’였다.
‘거나’는 나의 대학 동기로 가끔 만나 사람들 사이에 섞여 술을 마시는 그렇게 친하지도 그렇게 서먹하지도 않은 사이이다. 성실하고 은근히 심각한 ‘거나’의 특기는 이야기를 하는 것인데, 그 이야기들이 어딘지 밑도 끝도 결말도 없는 이상한 이야기이지만 이상하게도 술자리를 재밌게 만드는 윤활유 같은 매력이 있어서 모두들 ‘거나’를 좋아했다. 그러나 그가 하는 신비한 이야기들은 아무리 해도 믿기지 않는다고 하여 그의 별명은 ‘믿거나 말거나’를 줄인 ‘거나’였다.
나는 외근을 나오느라 점심을 먹지 못해 회사 근처의 카페 테라스에 앉아 샌드위치를 한입 베어물던 참이었다. 물론 나도 이 샌드위치 한 개 분의 시간이 끝나면 다시 칙칙한 사무실로 돌아가야 했지만, 짧게나마 주어진 자유에 왠지 모르게 싱글싱글 기분이 좋던 참이었다. 그런 혼자만의 시간에 마침 길을 지나가던 거나가 말을 건 것이었다. 거나도 거래처에 다녀오는 길이라고 했다.
마침 나는 먹고 있던 참치 샌드위치에서 거추장스러운 양상추를 빼고 있었다. 양상추가 싫다기 보다는 깨끗한 샌드위치의 빵 사이에서 튀어나와 미관상 보기 좋지 않은 작은 놈을 빼고 있었을 뿐이었다. 다 큰 숙녀가 샌드위치를 한입 베어 물었을 때 칠칠 맞지 못하게 양상추 하나가 떨어지면 창피하니까. 기분 좀 내보겠다고 타인의 눈에 띄기 쉬운 카페 테라스에 앉았지만 그래도 남의 이목 정도는 신경 쓰는 나였다.
“양상추를 싫어하는 건 아니지?”
신기하게도 상대의 생각을 꿰뚫어보는 듯한 놀라운 질문을 건네곤 하던 거나였지만 오늘은 내가 양상추를 빼는 이유를 잘 모르는 모양이었다.
“양상추 싫어하는 사람도 있나?”
“그럼 있지. 난 그런 여자를 만난 적도 있어.”
어느새 맞은 편 자리에 앉은 거나는 아무렇지도 않게 내 커피를 마시고 있다. 보통 남자들이 이런 행동을 하면 꽤 무례하게 느껴지기 마련이지만 이상하게도 거나의 그런 행동은 오히려 매너 있어 보일 정도였다. 매사에 그가 심각하기 때문일까. 무언가 지금 커피를 마시지 않으면 안 되는 중대한 이유라도 있어서, 이를테면 지구의 존폐위기나 외환위기 같은 중대한 일이 그가 커피를 마시느냐 못 마시느냐에 따라 큰 영향을 받는다거나 해서 반드시 커피를 마셔야 할 상황처럼 느껴져 버린다. 그게 그의 매력이다. 아니 마력일지도 모르겠다.
도시전설 같은 거나의 이야기는 술자리에나 어울릴 법 하지만, 그의 입에서 처음 나온 이야기 소재인 ‘여자와의 만남’은 꽤 생소하다. 이건 분명 연애 이야기다. 대낮에 만나는 거나의 핑크빛 연애 얘기라면 또 새로운 마력이 있을 것이다. 나도 모르게 입맛을 다시며 거나를 향해 의자를 당겨 앉았다.
“연애얘기야?”
드디어 오늘도 거나의 이야기 보따리가 풀리는구나.
“우리회사 이름 알아?”
“뭐였더라? 저번에 받은 명함이 있는데…”
나는 마침 옆에 있던 지갑을 뒤져 거나의 명함을 찾아냈다.
“YSC? 뭐 하는 회사였더라?”
“음 양상추의 줄임말이야.”
아무렇지도 않게 대답하는 거나. 이건 정말 100% 농담이다.
“농담이지?”
“당연하지. 하지만 일부 사람들이 내가 다니는 회사의 이름을 양상추의 줄임말이라고 믿어도 문제가 없을 만큼 나는 양상추를 좋아해.”
“그렇게 좋아했어? 양상추를?”
“그럼, 지금도 네가 먹고 있는 샌드위치 안의 양상추를 다 뺏어 먹고 싶을 지경이니까.”
왠지 억지로 욕구를 억누르는 듯 거나의 미간에 주름이 생겼다. 왠지 모를 식은땀도 흘리는 듯 보였다.
“걱정마. 남의 샌드위치에 들어있는 양상추를 빼먹고 싶어서 쩔쩔 맬 만큼 비정상적으로 양상추가 좋은 건 아니니까.”
거나는 또 내 마음을 읽은 모양이다. 얄미운 녀석. 가끔 거나는 이렇게 내 생각을 뻔히 들여다 보는 것 같은 말을 해서 나를 움찔하게 한다.
“어서 그 양상추를 싫어하는 여자에 대한 이야기라도 해봐 좀.”
“그렇게 특별하거나 유별난 경험은 아니야.”
어느 가을이었다. 그날도 거나는 거래처에 들렀다가 사무실에 바로 들어가기 귀찮아 주변을 어슬렁거리던 참이었다. 어딘가 서늘하고 건조한 가을날씨가 거나로 하여금 수분을 필요하게 만들었다. 오랜만에 찾아간 거래처라 회의 중 긴장을 했는지 침이 다 말랐다. 점심도 먹지 못하고 목도 마른 참이었다. 거나는 물보다는 사각거리는 양상추 샐러드가 그리웠다. 거리에는 그런 거나의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낙엽들이 뒹굴거리고 있었다. 다 말라빠진 플라타너스의 이파리가 거나의 발에 밟히는 순간 ‘와삭’하고 비스켓이 부서지는 소리를 냈다. 그 마른 소리들이 거나의 갈증을 심화시켜 양상추에 대한 간절함을 더더욱 불러 일으켰다. 그런데 바닥에 거나가 그렇게 먹고 싶어하던 양상추 하나가 떨어져 있는 것이 아닌가. 하나.. 둘… 셋…. 마치 뒤에 오는 이를 유도하듯, 마법사를 만나러 오즈로 찾아가는 도로시 일행의 발걸음을 인도하는 황금벽돌마냥 양상추가 하나 둘 바닥에 떨어져 거나를 부르고 있었다. 너무나도 양배추가 먹고 싶은 나머지 낙엽이 다 양상추로 보이는 건 아닐까. 거나는 눈을 비볐다.
“그건 거나 답지 않은데. 매사 냉정하고 이성적인 거나가 그렇게 감성적이고 본능에 충실한 인간이었단 말이야?”
“솔직히 이건 약간은 과장된 이야기일지도 모르겠지만. 그날은 좀 특수했어. 좀처럼 차분한 나라도 그날 만은 이상하게 며칠 굶은 야수와 같은 심정이었다니까. 그날 날씨가 날 그렇게 만들었는지도 모르지.”
서늘한 날씨와 남자의 야수성과 어떤 상관관계가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날씨에 따라 성격의 차분함까지 영향을 받는다는 건 어딘지 모르게 의아했다. 아무튼, 거나가 본 것은 정말 양상추였을까? 아니면 신기루였을까?
“양상추 이파리 세 장째를 따라갔을 때 알았는데, 그 양상추는 어느 여자가 흘리고 있는 거였어.”
마치 길바닥에 떨어진 돈을 줍듯 조심스럽게 양상추를 주운 거나는 살짜기 세 장의 양상추를 포개 그녀의 어깨를 두드렸다.
“이걸 떨어뜨리셨는데요.”
“푸하하하하하. 이봐. 말도 안돼. 그녀에게 작업을 걸었던 거야?”
“작업을 건 것이 아니야. 그때의 내 행동을 돌이켜보면 평소와는 약간 다른 조건에 의해서 신체와 정신의 상태가 보통 때와는 달랐어. 몸에서 가장 필요로 하고 있던 양상추가 눈 앞에 나타났을 때 그 양상추 이파리 한 장의 가치가 평소와 다르게 마치 만 원짜리 지폐 한 장 만큼은 느껴졌던 거야. 물론 그것이 다른 이들에게는 절대로 적용되지 않을 그 순간 나만의 가치라는 걸 망각하고 타인에게 똑같이 적용시킨건 정상적이지 않았지만.”
“한번 생각해보기도 전에 행동이 앞서나간 거구나. 마치 첫눈에 반했을 때처럼…”
“하지만 그녀에게 반한 게 아니라 양배추가 간절한 순간일 뿐이었지.”
아무튼 다소 황당한 거나의 행동에 양상추를 한 장씩 흘리고 가던 여자는 의아한듯 뒤를 돌아봤다. 거나는 양상추 세 장을 내밀고 있었다. 그녀에게도 거나만큼 소중한 가치를 지닌 양배추였다면 분명 그녀는 환하게 웃으며 90도로 허리를 굽혀 거나에게 인사했을 것이다. 그러나 그런 이는 지구상에 거나 밖에 없을 것이다. 적어도 그 시각 그 자리에는 말이다.
“떨어뜨린 게 아니라 버린건데요?”
무미건조한 그녀의 대답은 거나에게 실로 충격이 아닐 수 없었다. 게다가 그 말을 하는 동시에 그녀는 손에 들고 있던 양상추를 또 다시 바닥으로 버렸다. 평상시 운동신경이 그리 뛰어나지는 않았지만 그 순간만은 양상추를 애타게 바라고 있던 거나는 번개와 같은 속도로 팔을 뻗어 바닥을 향해 추락하는 네 번째 양상추를 구해냈다. 그리고 그 욕구가 너무 강했던지 구해낸 네 번째 양상추를 자신도 모르게 입 속으로 넣어 맛있게 와작와작 먹었던 것이다.
여자는 매우 어이가 없었다. 작업을 걸려는 사람이라고 하기엔 행동이 너무 이상했다. 노숙자라고 하기엔 차림이 너무 말쑥했고, 정신이 이상한 사람이라는 표현이 딱 맞아떨어질지도 몰랐다. 그럼 이 사람은 혹시 ‘양상추에 미친 사람?’
“혹시 양상추에 미쳤어요?”
“미쳤다기 보다는 양상추를 좋아할 뿐입니다. 그리고 떨어뜨리신 이 귀한 양배추를 찾아드려야겠다는 생각을 했을 뿐이구요. 그런데 이걸 버리셨다구요?”
조금 격앙된 말투로 거나는 그녀에게 대들었다. 그도 그럴 것이, 지금 거나에게 무엇보다도 소중한 건 양상추요, 그걸 버린 죄악을 저지른 천벌을 받아도 마땅한 여자 앞에 있는 것이다.
“제가 왜 그쪽에게 이런 얘기를 해야하는지 모르겠지만, 저는 솔직히 말해서 양상추가 싫어요. 제가 먹기 싫어서 그냥 버렸을 뿐이고, 들고 있는 것도 귀찮아 생각 없이 바닥에 내려놨을 뿐인데, 그쪽에게까지 간섭을 받을 필요는 없다고 생각하는데요?”
네 번째 양상추를 씹고 나서 드디어 정신이 돌아온 걸까. 그제서야 거나는 자신이 무슨 일을 하고 있는지를 드디어 깨달았다. 지금 그는 생판 모르는 행인을 불러 세워 자신의 논리로 윽박지르는 그가 평소에 경멸하던 비정상적인 행동을 하려던 참이었던 것이다. 거나는 평소와 같은 냉정을 되찾기로 마음먹었다. 이미 그러기엔 늦었는지 모르겠지만.
“죄송합니다. 저도 모르게 그만. 그냥 저는 양상추를 좋아하는 사람일 뿐이고. 이토록 양상추를 싫어하시는 분을 처음 뵙는 바람에 실수를 한 것 같군요. 이상하다고 생각하셔도 어쩔 수 없습니다. 정말 실례가 많았습니다.”
지성인으로 돌변한 거나는 그녀에게 사과하고 상식적으로 돌아섰다. 그리고 정말 자신에게 부족한 양상추를 먹으러 가야겠다고 생각하며 발걸음을 바삐 옮겼다. 바로 그때 그녀의 목소리가 들린 것이다.
“저, 저기요. 잠깐만요!”
“네?”
그녀의 손에는 샌드위치 안에 들어있던 나머지 양상추 두 장이 들려있었다.
“양상추를 그렇게 좋아하시면 우선 이거라도… 어차피 버리려고 했던 거니까 버려지는 것 보다는 그렇게 양상추를 좋아하시는 분이 드시는 게 낫겠네요.”
“네?”
“아니면 그냥 버립니다.”
그녀의 손에서 양배추 두 장이 다시 낙하를 시작했을 때 거나의 본능은 다시금 그곳으로 발을 뻗어 양상추를 구해내도록 했다. 스스로도 믿을 수 없는 자신의 의외의 행동에 거나의 얼굴이 약간 붉어졌음은 말할 것도 없다. 그런 거나의 모습이 양상추를 싫어하는 그녀에겐 신기해 보였나 보다. 그녀는 태도를 바꾸어 살짝 웃고 있었다.
“당신 조금 재밌네요. 언젠가 어쩔 수 없이 양상추를 먹어야 할 순간이 되면, 연락드릴께요. 제 양상추를 대신 먹어주실래요?”
“그래서? 그녀에겐 연락이 왔어?”
“오긴 왔지. 두어번. 한번은 패밀리 레스토랑에서 샐러드를 먹을 때였고, 또 한번은 한밤 중의 샌드위치 가게였어.”
“그럼 그때마다 가서 그 여자의 양상추를 대신 먹어준거야?”
“그건 핑계라고 생각해. 그냥 양상추를 대신 먹어주면서 이야기를 나눈거지.”
“그녀와는 지금도 만나고 있는거야?”
“아니. 그녀는 자신의 양상추를 대신 먹게 했을 뿐, 다른 건 먹지 못하게 했어. 세 번째 만났을 때였나? 케이준 치킨샐러드의 치킨을 먹지 못하고 양상추만 먹는 느낌은 더이상 참을 수가 없어서 솔직하게 치킨도 먹게 해달라고 얘기했더니 그때 이후로는 연락하지 않더라.”
“뭐야, 니가 먹을 분량 정도는 직접 주문해야 하는 것 아니야?”
“그러면 왠지 둘 사이의 관계가 더 애매해질 것 같았어. 나는 그녀가 먹지 못하는 것을 대신 먹어준다는 뭔가 신비로우면서도 기능적인 위치를 원했던 것 같아. 아무리 양상추를 좋아한다고 해도 다른 음식은 전혀 먹지 못하고 양상추만 먹는다는 건 사실 고문에 가깝잖아.”
“애초에 그녀를 만나던 그 때의 네가 특수한 상황이었다고 보는데?”
“그렇지. 아무리 그래도 길 가는 여자에게 그런 식으로 말을 거는 건 좀 심했다고 봐. 그땐 내가 어떻게 됐었나봐.”
“그런데 지금도 내 샌드위치 안에 있는 양상추를 노려보고 있잖아. 지금도 완전히 정상적인 거나는 아닌 듯 한데?”
“응. 사실은 아까부터 그 양상추가 먹고 싶어서 참지 못하겠어.”
“알았다. 자 받아.”
나는 살짝 망설여졌지만 내가 먹던 샌드위치를 통째로 그에게 내밀었다. 아무리 양배추를 좋아한다고 해도 양배추만 그에게 건네주는 건 예의가 아니었던 것 같아서다. 그는 양배추뿐만이 아니라 샌드위치도 함께 먹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땡큐!”
역시 나의 예감이 틀리지 않았는지 거나는 웃으며 샌드위치를 받아 들었다. 아무렇지도 않게 본래부터 본인의 것처럼 너무나도 자연스럽게 샌드위치를 입으로 가져갔다. 그 모습이 나에겐 자연스러움을 넘어서서 어떠한 바꿀 수 없는 절대적 진실처럼 보이기까지 했다. 마치 거나가 나의 샌드위치를 먹지 않으면 안 되는 중대한 이유라도 있어서, 이를테면 지구의 존폐위기나 외환위기 같은 중대한 일이 그가 샌드위치를 먹느냐 못 먹느냐에 따라 큰 영향을 받는 것 같은 반드시 샌드위치를 먹어야 할 상황인 것처럼 말이다.
(2008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