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곳에 와서 인정해야 할 몇가지 사실과 마주쳤다. 그것은 내가 애써 외면하고 있었던 나 자신이며, 이 곳에서 어쩔 수없이 마주해야할 사실이었다. 그것들은 앞으로의 내 생활에 지대한 영향을 끼칠 것이며, 모른 척 하고팠던 나는 또다른 우울함과 직면했다.
하나는 체력의 한계. 여행을 할 때마다 망각하고 마는 것이 있다. 여행의 흥분과 즐거움과 낯선 곳의 풍경들이 주는 인상과 기억에 빠져, 그 때 그곳들을 돌아다녔을때 나의 무릎과 발바닥과 발목이 얼마나 아팠는지를, 저녁때 들어와 붙였던 파스의 향기와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느껴야했던 삭신의 고통은 어땠는지를 새까맣게 잊고 마는 것이다. 하지만 시간은 사람을 지혜롭게 만들어주는 법. 몇 번의 실수가 반복되고 나서 나는 여행의 그리움이 떠오를 때마다 그당시의 육체적 고통을 끄집어 내어 진정시키곤 했고, '여행'이라는 단어에 '체력'이라는 또 다른 단어를 그림자처럼 붙여놓았다. 이번에 나는 분명히 알고 있었다. '몸이 힘들 것임을'
하지만 피곤과는 다른 또 다른 체력적 한계에 직면했다. 그것은 바로 '쇄약함'. 극히 움직임을 자제하던 내 자신이 얼마나 약해졌는지를 역설해주는 하나의 현상이며 사실이다. 비행기 속에서의 추위와 건조가 나를 한번 약하게 했고, 생각보다 훨씬 서늘한 11월 같은 런던의 날씨가 나를 두번 약하게 했다. 여행자의 피곤에 다다르기도 전에 나의 쇄약함은 감기를 만났고, 콧물과 기침과 가래와 눈거풀의 무거움과 몸살을 선사했다. 어른들이 말하던 '하루하루가 다르다'는 이야기를 나는 여기서 몸으로 실감했던 것이다. 조금이라도 젊을 때 떠나라,는 이야기는 허투가 아니었다.
또 다른 하나는 너무나도 당연한 언어의 한계. 일주일이나 열흘을 지내겠다고 마음먹었을 때와는 전혀 다른 새로운 두려움이었다. 나는 영어를 외면하는 방법을 지금껏 터득해왔다. 지루한 수업시간엔 몰려오는 졸읍과 손잡았고, 영어듣기평가에서는 십여분의 혼란을 정말이지 꾹 참으며 중요단어만을 얍삽하게 집어냈다. 물론 중간중간 그 두려움과 한계를 극복하려는 노력은 조금씩 있었지만, 난 영어만이 살길은 아니라는 걸 몸소 보여주겠다는 새로운 결심으로 내 인생의 가시밭길을 헤쳐나가기로 결심했다. 문법과 단어가 유사한 일본어와 친해졌고, '영어없이 행복해요~'를 과시하려 정말 무던히도 노력했었다. 따라서, 두어번 이곳에 짧게 머무를 때도 나는 일주일만 견디자 내지는 다른 이에게 의지하며 말 한마디 없이 여행이 가능함을 몸소 실현했던 것이다.
그러나 한달동안 이곳에 있어야 하는 상황에 다다르자, 영어들은 새로운 감각으로 내게 다가왔다. 라기보단 거리로 나가자 쏟아져 나오는 수많은 빠르고 못알아듣는 이 언어들이 한달동안 나를 휘감을 것이라 생각하자 영어를 애써 외면해왔던 나에게 새로운 두려움이 생기고 말았다. 나에게 하는 말도 아닌 나를 둘러싼 모든 공간에서 공기처럼 존재하는 쏼라쏼라 영어 소음들은 나를 위축시키기엔 충분하다.
게다가 화장실 물 내리는 것 하나도, 욕실에서 샤워하는 것 하나도, 치즈를 자르거나 가스렌지를 쓰거나 오븐을 쓰는 것 하나도 다 새롭다. 100년도 넘은 집의 천장이 높은 방. 샤워를 하기 전엔 온수기의 ON 버튼을 미리 눌러놔야하고, 수도꼭지는 찬물용 뜨거운물용 두개이며, 오븐이나 가스렌지를 쓰려면 왼손으로는 버튼을 누르고 오른손에 라이터를 쥐고 불을 붙인다. 지금까지 슬라이스 치즈만을 먹었던 내가 이젠 토스트를 먹기 위해서는 덩어리 치즈를 칼로 집중해서 자르고 있다. 마치 어린아이가 생활의 방식을 익히듯 하나에서 열까지 생소한 것들이 몸에 익을 때까지 배우고 익혀야 한다. 그것도 샤워나 요리 같은 사소한 움직임을 위해서 말이다. 물론 한국에서의 방식대로 제품을 선택하고, 삶의 방식을 선택할 수도 있지만, 여긴 런던이며, 동생이 거주하는 집이며, 우리에겐 금전적인 여유가 없기에, 여기서 가장 효율적이고 좋은 방식을 선택해야 한다.
그런 일련의 단계들이 쇠약해진 나의 육체와 함께 다가와 마음을 무겁게 했다. 방법은 단 하나, 익숙해지는 것 뿐. 도착한 첫날부터 걱정하기엔 남은 24일이 무겁고 산같지 않은가. 난 즐기러 온 것이지 괴로워하러 온 것은 아니니까. 물론 분명한 건, '여기까지 올 필요는 없었다'

